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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상속세 인하…‘뇌피셜 정책’이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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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상속세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증거기반정책(Evidence-Based Policy)이란 말이 유행이다. 정부 통계, 빅데이터 등 과학적으로 생성된 증거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공공데이터 공개가 제법 잘된 나라다. 최근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공데이터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네차례 연속 1위를 차지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유행 시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이나 요소수 대란 때 요소수 재고 현황 개방 등이 높게 평가되었다고 한다. 특히, 빅데이터니 인공지능(AI)이니 하면서 데이터는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공식(오피셜)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그냥 ‘느낌적 느낌’으로, ‘뇌피셜’(근거 없는 생각)로 정책을 만드는 것이 문제다.

나쁜 기업지배구조와 정경유착

최근 정부는 연일 감세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법인세 인하를 주장했다.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법인세율을 내려도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기적의 논리를 폈다. 세율을 내리면 투자가 늘고 투자가 늘면 경기가 좋아져 세수가 줄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인세율을 낮췄을 때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실증연구는 찾기 어렵다. 추 전 부총리의 뇌피셜이었을 뿐이다. 놀랍게도 기획재정부도 추 전 부총리의 주장을 부정했다. 기재부의 공식 문서에 따르면, 법인세율 인하만으로 5년간 약 28조원의 세수가 줄고, 2022년 정부 세법 개정에 따라 5년간 60조원이 준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023년 국세 결손 규모는 60조원에 이르고, 2024년 통합재정수지 예측치는 적자 규모가 무려 45조원이다. 말끝마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정부가 정부 지출을 졸라매는데도 재정수지 적자 폭은 커지는 것이 감세 정책과 무관할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은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속세 때문에 우리나라 주식이 낮게 평가받는다(코리아 디스카운트)고 주장한다. 그런데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일으킨다는 실증연구는 찾기 어렵다. 상속세를 줄이고자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근로소득세가 늘어날까 봐 급여가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만큼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수없이 많은 이사, 노동자, 시장 참여자가 회사 가치를 올리려고 노력하는 상황에서 총수 개인 의지만으로 거대 상장회사의 주가를 얼마나 낮출 수 있을까?

반면, 기업지배구조가 주식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증연구는 차고 넘친다. 2006년 당시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 학장,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버나드 블랙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가 함께 펴낸 논문 ‘지배구조로 기업의 미래가치를 예측할 수 있는가’ 등의 실증연구 등을 보면 나쁜 기업지배구조가 주식 가격을 낮추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지배력을 위해 삼성물산의 가격을 낮게 평가하고,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 삼성물산 주주가 손해를 입은 것은 상속세가 높아서가 아니다. 기업지배구조가 엉망이어서 그렇고, 총수 일가와 정부가 유착됐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재벌 총수와 정치인이 떡볶이를 같이 먹으러 다니고, 상속세 인하 같은 재벌 총수의 바람을 정치인이 공식적으로 말하는 유착관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이다.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문제의 근본은 불과 1~3% 지분만을 지닌 재벌 총수가 수백조원에 이르는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1.6%에 불과하다. 이 지분만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비롯한 삼성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고자 한다. 정상적인 지배구조로는 불가능한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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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프리미엄 반영 못한 ‘할인 과세’

그리고 각 법인은 주주와 법인의 이익이 아니라 총수 일가와 재벌 3세의 이해관계에 따라 잘못된 경영 판단을 한다. 그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술을 보유한 엘지(LG)화학이 배터리 부문을 쪼개서 따로 상장하는 일 등이 한국에서 비일비재하다. 엘지화학 주주는 “세계 최고 배터리 회사 주주에서 페트병 만드는 회사 주주로 전락했다”고 푸념을 할 정도다.

나쁜 기업지배구조로 발생한 예측 불가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속세를 인하하면, 재벌 3·4세의 지배력이 더욱 높아지고 이들의 지배력 강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더 악화할 수 있다. 상속세를 내는 것은 재벌 총수지 기업이 아니다. 상속세를 인하하면 재벌 총수만 이득을 보고 잘못된 기업지배구조 강화로 기업은 손해를 볼 수 있다. 특히, 경영권 분쟁 등 인수·합병은 주식시장의 최대 호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실증된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상속세에 과도한 할증 과세가 존재한다고도 했다. 많은 언론도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대주주 할증까지 더하면 60%라고 언급한다. 완전히 팩트가 틀렸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상속 재산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근대국가 세제의 기본은 ‘실질과세 원칙’이다. 액면가 1천원인 주식이 시장에서 1만원에 거래되면 상속가액은 1천원이 아니라 1만원으로 평가해야 한다. 1만원 상속 재산에 1천원의 상속세를 부과한다면 세율은 10%다. 대주주 할증을 고려한 세율이 60%란 기사는 마치 액면가 1천원 대비 세율이 100%라고 표현한 것과 같은 오보다. 윤 대통령이 말한 ‘과도한 할증 과세’는 대주주 할증(경영권 프리미엄) 과세를 의미한다. 그러나 경영권 프리미엄에 따라 시장 가격이 높아진다는 실증연구는 차고 넘친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와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우리나라 경영권 프리미엄 현황 분석’ 연구를 보면 경영권 프리미엄은 평균 45% 이상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상속세법 할증률은 20%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과도한 할증 과세가 아니라 시장에서 형성된 경영권 프리미엄 가격조차 반영하지 못하는 ‘할인 과세’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윤 대통령 말과는 달리 미국 등 여러 선진국도 상속가액 평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한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빅데이터가 넘쳐도 이를 정책에 반영하지 않고 뇌피셜로 정책을 만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감세해도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증거도, 상속세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온다는 증거도, 우리나라 상속세에 과도한 할증 과세가 존재한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오히려 반대 증거는 차고 넘친다. 데이터 평가에서 1위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증거기반정책이 잘 구현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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